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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문학

낭만주의 문학

 

18세기 신고전주의 문인들이 시가 인간의 삶을 모방하는 일종의 거울이라고 보았다면, 낭만주의 시인들은 시가 시인의 정신, 상상, 정서를 표현하는 램프라고 보았다. 신고전주의 시인들이 주로 히로익 커플릿의 풍자시를 즐겨썼다면, 낭만주의 시인들은 시의 장르간의 위계질서를 상정하는 신고전주의적 가설에 반발하면서 이제까지 시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하위에 속한 것으로 생각해오던 일인칭의 서정시를 즐겨 사용하였다. 또 신고전주의 시인들은 미적 즐거움과 교훈을 동시에 주는 시를 쓰려고 한 반면 낭만주의 시인들은 발라드, 무운 명상서정시와 같은 시 형식을 선호하면서 독자에게 직접적인 교훈을 주는 것보다는 작가의 정신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중요성을 부여한다. 신고전주의 시인들이 고전적인 선례의 습득을 중시한다면 낭만주의 시인들은 만약에 시가 나무에 잎이 피듯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아리나면 차라리 나타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하면서 시의 자연발생성, 상상력의 자유로운 활동을 강조하였다. 새무얼 테일러 코울리지가 문학작품은 시인의 상상력속에 씨앗과 같은 아이디어가 싹터져 감각경험의 소재를 흡수하여 자라나 부분과 부분, 그리고 부분과 전체 사이에 상호긴밀한 연관을 맺는 유기체라고 설명한다거나 셸리가 태아가 모체의 자궁에서 자라나듯이 위대한 조각품이나 그림은 예술가의 능력속에서 자라난다라고 말한것은 시작 활동에 대한 이들의 상각을 잘 보여준다. 신고전주의 문인들이 시인이란 시의 규칙에 숙달되어 자주생각나면서도 한번도 잘 표현되지못했던 보편적 진리를 기예와 기지를 가지고 전달하는 자라고 상정한 반면 낭만주의자들은 시인을 꿰뚫어 보는 자 , 예언자, 혹은 대시인이라고 부르면서 시인을 위기에 처한 서구문명의 대변자라고 본다. 신고전주의자들이 합리, 절제, 조화를 문학의 이상으로 삼는다면 낭만주의 시인들은 충동, 과잉, 갈등을 환영한다. 이러한 낭만주의의 사상의 근저에는 17세기부터 시작된 뉴튼적인 합리주의의 기계적, 물질적 세계관에 대한 반발이 깔려있다.

문학에서의 낭만주의의 시발을 본격적으로 알린것은 아마도 워즈워드와 코울리지가 함께만든 시집 Lyrical Ballads의 출간이라 할수 있다. 이 시집은 18세길ㄹ 지배했던 문학전통과의 최초의 의식적이고도 고의적인 절교였다. 사실 18세기 동안에도 신 고전주의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점차 증대되고 있었고 특히 1740년대 이후에는 시의 주제와 형식에서 뿐 아니라 비평에서도 많은 새 개념들이 대두되어 왔는데, 워즈워드와 코울리지는 단편적으로 산재되어있던 이러한 생각들을 끌어 모아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인위적인 시어에 반대하고, 이전에는 저급한 전원시에나 알맞았을 소박한 삶을 소재로 삼고 사람들이 실제 사용하는 자연스런 언어를 시어로 사용함으로써 시의 장르 주제 문체에 대한 위계질서를 뒤집어 버렸다. 이들은 이러한 평범한 삶의 풍경을 상상의 눈으로 새롭게 보도록 함으로써 독자를 습관의 무감각상태에서 깨워 일상적인 것에서 경이감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자연적 초자연주의라 불리우는 낭만주의 시의 이러한 특징은 세계를 새롭게 만드는 상상력의 힘에 대한 이들의 믿음을 잘 보여준다.

프랑스 혁명은 영국의 초기 낭만주의 시인들에게 시의 영감의 원천이었다. 사실상 워즈워드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어떤 작가도 스스로를 낭만주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약 50년이 지나고나서야 역사가들에게 이러한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이들을 이렇게 함께 묶을 수 있게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이 프랑스 혁명과 관련이 있다. 즉, 프랑스 혁명은 전래의 규범과 낡은 악습, 구체제를 타파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 정신에 새로운 자극을 주었고 세계와 문학의 갱생에 대한 꿈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번즈, 블레이크, 워즈워드, 코울리지, 로버트 사우디, 메리 울스톤크레프트는 프랑스 혁명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특히 블레이크와 같은 이는 프랑스 혁명이 성경에 예언된 지복천년왕국에 선행하는 단계라고 생각하여 혁명을 영령히 환영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이 변질되어 이들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게되자, 워즈워드 , 코울리지, 셸리와 같은 시인들은 혁명이 불러일으켰던 지복천년의 꿈은 그대로 간직하되, 그것을 사회적 혁명과 같은 집단적 변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상상적 비전의 변화 혹은 세계관의 변화와 같은 개인적, 내적 방식을 통해 이뤄가고자 했다. 혁명에 걸었던 꿈이 좌절되자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으로서 시를 선택한 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에대한 기대가 이렇게 컸기때문에 이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시가 그 역할을 제대로 담당하고 있는지 계속 회의하게 되고 자신들의 능력에 대해 의심하게되기도 한다. 현대 비평가들이 자주 언급하듯이 이들의 시 속에서 자기 회의, 끝없는 자의식, 자아 분열, 복화술 등의 현상이 보이는 것은 낭만주의자들의 시에 대한 이런 엄청난 기대와도 연관이 있다.